저희집 창문을 열면 맞은편에 있는 5층건물 외벽이 보입니다.그 외벽에는 층마다 에어컨 실외기를 둘 수 있도록 비치된 공간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오랜 기간 비둘기의 서식지가 되어왔습니다. 제가 이 곳으로 이사 온지 8년이 되었으니 그 보다 더 오랜 기간
비둘기들의 안식처였을겁니다.저희집 건물과 맞은 편 건물 사이 골목에는 비둘기들의 배설물이 늘 떨어져 있었습니다.시청에 민원을
넣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사람들이 걸어다니기보다는 주로 차로 이동하는 곳이 었고 또 한차례 비가 내리면 말끔히 배설물이 청소가
되었기에 지금까지 같이 공존하며 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저씨들이 사다리차를 끌고 와서 실외기가 놓여있는 공간을 연두색 철망으로 막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갈수록 비둘기들이 많아지니 건물관리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공사를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 곳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압력솥 밥의 수증기를 빼내려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서 몸이 얼음이 되었습니다. 골목 위 전깃줄에 엄청난 비둘기 떼들이 앉아있는 것과 실외기 공간을 막아놓은 철망 안으로
갇혀있는 비둘기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외기가 있는 공간에는 층과 층 사이로 이어지는 배관이 있었는데 오늘 갑작스런 공사에
놀라 배관 틈 사이로 나 있는 구멍 속으로 비둘기들이 숨어들어갔던 것으로 추정이 되었습니다.공사하는 아저씨들이 떠나고 나왔을
때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겠고요.
철망사이가 너무 촘촘해서 빠져나오기 불가능했지만 안에 있는 예일곱되는 비둘기들이 철망앞에서 자꾸만 날개를 푸드득
거렸습니다.그리고 철망 밖에 비둘기들도 철망에 매달려 푸드득 걸리다 힘이 빠지면 다시 전깃줄에 앉았다가 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철망을 사이로 두고 벌어지는 이 애처로운 광경을 바라보는데 정말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현실이 아니길
바랬습니다. 온 동네 잿빛 비둘기들이 다 모인 듯 마치 초상집 분위기를 방불케 했습니다. 저 보다도 딸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엄마가 시청에 일찍 전화해서
비둘기를 구해 달라고 이야기하겠다고 안심시켰습니다.
다음날 아침, 철망 사이를 두고 이산 가족이 된 비둘기를 지켜보며 시청에 전화를 하니 야생동물구조과로 연결을
시켜주었습니다. 직원분께서는 오후에현장에 나가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밖에 나와 하루 종일 바빴기에 비둘기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청직원분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건물 관리소장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드렸더니 저녁에 철망작업하신 분들을 다시 불러서 구조하신다고 하네요."
"아... 네... 수고많으셨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아직 비둘기가 구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찜찜한 그 기분은
예감이었을까요. 창문 밖을 계속 내다보았지만 비둘기들이 구조되지 못한채 깜깜한 밤이 되었습니다.
"엄마, 저녁에 비둘기 구조한다고 아저씨들이 온다고 했는데 왜 아직 안 와?"
저도 속으로 딸아이와 같은 질문을 계속 하고 있었지만 침착하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응, 아저씨들이 다른 일이 많이 약속되어서 시간이 없어서 못 오셨을 수도 있어. 좀 기다려 봤다가 그래도 안
오시면 시청에 다시 전화해 볼게."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비둘기들은 구조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맞은편 건물에 사는 저만 이 광경이 보이지, 그 건물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사태를 알 까닭이 없고 또 관리소장님도 이 광경이 보이지 않으니 잊어버린게 분명했습니다.
다시 야생동물구조과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둘기가 아직도 갇혀있다고 말씀드리니 다니 현장에 나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비둘기들은 여전히 갇혀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비슷한 상황을 찾아보니 비둘기는 해조(害鳥) 에
속해서 비둘기 구조 신고가 접수되어도 구조를 하지 않는 지자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윤리차원에서 이 광경을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을 맞아가며 전깃줄과 철망사이를
오고가는 비둘기들, 그리고 철망안에 갇혀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있을 비둘기를 보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저 비둘기들은 서로 어떤 사이 일까. 저 안에 갇힌게 형제자매일까. 부모일까. 아니면 새끼들일까.?' 말 못하는
비둘기들이 푸드득 푸드득 거리는 날갯짓 소리마저 구슬프게 들렸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저에게 이런 애처로운 광경을 지켜봐야하는 시련을 주시나이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는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야생동물구조과로 전화를 해서 구조의지와 방치하는것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저의 긴 하소연을 들어주신
직원분께서는 어제도 그제도 현장에 나갔지만 쉽지가 않다면서 오늘도 다시 나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학원에서 돌아온 딸이 허겁지겁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내가 지금 집에 오면서 봤는데 시청에서 나와서 비둘기들을 살려주려고 해!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이야! 빨리 창문 열어서 봐봐!"
딸아이 말을 듣고 서둘러 창문을 열어보니 철망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긴 막대 같은 것으로 천장안에 비둘기들을
한쪽으로 몰고계셨고 이윽고 외벽에 열어진 창문으로 비둘기들을 잡아 내보내는 손이 보였습니다. 한 마리, 또 한마리, 계속해서
비둘기를 세상으로 내 보내는 그 손이 얼마나 값지게 느껴지던지요. 비둘기들에게는 그토록 기다린 구원의 손길이었겠지요.
찜통더위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은 날, 철망 속에 들어가 구조하시는 시청 직원분 옷을 보니 등뒤가 다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비둘기 배설물과 깃털, 먼지 등을 뒤집어 쓰셨을지... 생각보다 긴 구조 작업, 생각보다
많은 비둘기들이 직원분 손에 잡혀 빠져 나와 날아가는데 그동안의 근심이 풀어지며 눈물이 났습니다. 구조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고요.
한 순간 시청직원분의 진정성을 의심했던것이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말로만 운운했던 나, 제가 미처 모르는 현장에서 뛰시는
분들의 상황과 처지가 있었을것인데 조급한 마음에 말로 상처를 드린게 자꾸 걸렸습니다. 구조를 마치시고 직원분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구조된 비둘기들이 무려 열다섯마리라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수고많으셨다는 말씀과 통화중에 의지가 없다, 방치다, 라고 말한것이 무례했던것 같고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수고에 보답드릴 길 없어 글로 감사를 남깁니다. 동물들에게 119와 같으신 인성좋으신 야생동물구조과 직원분들..
아낌없는 칭찬을 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