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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가족음악회 -<흥부는 대박나고 놀부는 ?>를 보고
우리나라 현대시 초기에 많은 영향을 끼친 「향수」의 작가 정지용은 시에 대한 관점을 “시는 사물의 새로운 존재 영역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물은 얼른 보면 그 특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시인의 시각에 따라 시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게 되면 그 참 모습을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은 사물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는 일과 보여주는 임무를 수행해야 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능력과 역할을 제시해 주는 말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점은 시의 영역에만 극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어떤 장르나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의 여러 영역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 7, 8일 양일간에 시민들에게 선사한 우리 시립 합창단의 공연에서도 그러한 강인한 인상을 받았다. 다양한 소리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끄집어내어 감성을 자극하고, 미의 영역을 잘 드러내어 쾌감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 가족 음악회』를 한다기에 우리 가족과 친구네 가족을 불러 함께 예술회관에 갔다. 가족을 위한 음악회라서인지 참여하는 관람객들 또한 어린 자녀들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여러 계층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때문에 실내는 다소 어수선하고 어린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음들로 산만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산만한 실내에서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 연주회를 할까?’, ‘무슨 방법으로 이 소란스러움을 추슬러 음악으로 안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나는 속으로 ‘이제 연주가 시작됩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라는 안내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염려는 첫 무대가 열리면서 그야말로 어설프고 수준 낮은 관람객의 기우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유명한 강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아 자기 강의 속으로 몰아넣는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훌륭한 명 연설자는 환경이나 여건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방법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대부분 음악회 공연 시작은 밝은 조명아래서 근엄한 자세로 엄숙히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연주의 시작은 어두움 속에서 불빛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관객을 향해 공연장의 규칙을 일러주는 일도, 관객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주문도 없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수준 낮은 관객 탓이라는 듯한 어떤 언사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시작부터 관객과 일반의 생각을 압도하고도 남는 뛰어난 연출과 하모니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처음 무대에서 불린 <여기 사람들 있네>, <감자>, <꿈속에서>, 등은 어린 아이들이 익히 아는 노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음악에 관심 있는 어른들에게라도 귀에 익은 노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산만하고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노래 속으로 한순간 빨려 들어 음악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첫무대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관객들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귀와 시선과 얼굴을 노래에 빼앗기고 말았다. 낯설면서도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도록 만든 선곡이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었고, 감미로운 화음이 노래에서 귀를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큰별이나 빛이 블렉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관객들이 합창단이 새롭게 창조해 낸 환희의 블렉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경이로움을 맞보게 해 주었다. 첫 무대는 나와 같은 수준 낮은 관객의 염려를 한순간 날려버리게 만들어주는 고도의 은유였다. 이는 악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연습한 지휘자를 비롯한 단원들의 땀의 마력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개작이후 처음으로 공연된 Music Drama 『흥부는 대박나고 놀부는?』는 노래의 벽을 넘어 현대 예술이 지향하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어서 참 좋았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시의 합창단 수준이 원래 이렇게 뛰어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원들의 연기력은 너무 뛰어나서 처음에는 전문 뮤지컬 배우들을 몇 몇 섭외해서 함께 참여한 줄로 착각하고 프로그램 안내지를 꺼내 이름들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연기를 펼치는 단원이나, 화음을 만들어 내는 전 단원이 모두 우리 시 합창단원들임을 알고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꼈다. 뻣뻣하게 서서 입만 방긋 거리는 단원들인 줄 알았는데, 유명 뮤지컬 배우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재능들을 이제야 제대로 발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 프로그램이 순천에서 초연이 된다는 사실을 듣고 우리 지방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가장 앞선 시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순천의 음악 수준을 높여주신 이병직 지휘자 선생님과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단원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온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중세의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조각은 돌 속에 들어있는 사람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라고 했다. 돌이 돌로 남아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명장의 손에서 다듬어진 조각은 세기를 넘어선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온 세상에 가득한 온갖 소리들 가운데서 예술을 끄집어내어 감동하게 만들어 주신 이병직 지휘자님과 단원들, 그리고 이일에 관여하신 분들의 예술혼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음에는 어떤 아름다운 예술을 끄집어내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줄까? 벌써부터 다음 연주회가 기다려진다.
『사연이 담긴 시 이야기』저자 마종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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