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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인 '신영'이는
2시간 내내 거의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바로 지난 12월 18일 송년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프로그램 유인물을 보며 하나하나 밑줄을 긋고 확인하고
가끔 묻기도 하면서 무언가에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있어, 이 어린아이까지 끌어당겼을까요?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 음악의 매력이었을까요?
음악은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정서를 건드려 줍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번갈아 솟구칩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연주자들의 훌륭한 성취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뭉클 솟아오르면서,
먼 옛날 고향이 떠오르고,
학창시절에 함께 부르던 노래도 생각나고,
정겨운 사람들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또한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게 됩니다.
심지어, 삶을 짓누르는 고통마저도 애틋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플라톤(Plato)이 말한 것처럼
“음악은 영혼의 비밀 장소로 파고든다.” 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날 공연은 ‘문화예술로 행복한 시민을 꿈꾼다’는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에 충분히 부합하는 행사였습니다.
프로그램 구성도 다양하고 짜임새 있었고
연주내용도 정상급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모두 훌륭했습니다.
동시에 몇 가지 느껴지는 사항에 대해
일반 관객의 상식적인 입장에서 고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우리 순천의 예술적 음악적 역량도
충분히 이 정도는 요구할만한 수준과 상황이 되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첫째, 레퍼토리(repertory) 선정에 고심해주십시오.
순수한 아마추어 관객은 이미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입장합니다.
이때 자기의 경험과 추억에 구체적으로 와닿는 음악이 흐를 때
감동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물론 생소한 곡이어도 단번에 마음을 뚫고 들어와
새로운 영혼의 눈뜸을 체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면 감동은 약해집니다.
이번 공연의 경우 대체로 훌륭했습니다.
다만, 한두 성악가의 경우 우리 가곡을 선정하거나
좀 더 친숙한 곡이 있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1부 가야금 협주에서
중간에 한두 곡 노래가 곁들여 졌다면 금상첨화 아니었을까요?
이것은 초등학생 딸아이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시립합창단과 함께한 순서도 참 신선했는데
이때 가곡이 한곡 섞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요컨대,
우리의 추억을 건드리는 반가운 곡과,
영혼의 눈뜸을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곡과 방식의,
절묘한 조화를 기대합니다.
둘째, 오케스트라 반주가 가끔 노래를 압도했습니다.
오랜만에 훌륭한 관현악단 연주는 참 반가웠습니다.
악기 하나하나가 살아있었으며
동시에 함께 어우러진 소리도 절제와 균형으로 조화로웠습니다.
그런데 노래 반주에서는 가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전주와 간주 부분은 아주 좋았는데,
성악가의 음성과 함께 나오는 부분에서
때때로 반주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웅장하여
노래 소리가 묻혀 버렸습니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의 경우 유독 심했습니다.
성악가의 노래를 들을 때에 관객들은 인간의 소리를 간절히 원합니다.
1/41이 아니라 1+40을 기대합니다.
즉, 수십 명 오케스트라 반주를 딛고 도도히 흐르는
인간의 음성을 그리워하는 것이죠.
고음의 찬란한 포효 뿐만아니라
저음의 미세한 울림까지 공감하고 싶어 합니다.
마치 자갈 바닥에 스며들듯 하면서도
그 위로 풍성히 흐르는 냇물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조용히 흐르는 피아노 반주로 하거나,
악기 수를 1/3수준으로 줄이거나,
소리의 양을 피아니시모(pianissimo)로 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훌륭했지만 부분적으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셋째, 정성스런 준비와 빈틈없는 리허설을 기대합니다.
성악가의 경우 자기의 대표적인 곡은
수백 번 공연으로 검증되었으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획단계에서 특별히 준비된
새로운 곡이나 듀엣 곡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번에도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어떤 곡의 경우
가사를 다르게 부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정 부분 가사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웅장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반주가 나오는 부분이어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요.
입모양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일부러 쉬었던 것일까요?
역시 프로페셔널답게 잘 넘어갔습니다만 다소 염려되었습니다.
베토벤(Beethoven)은 스스로 가장 완벽한 곡이라고 자부했던
'장엄미사곡' 총보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음악은 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금
나의 음악을 듣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가기를 원한다.”
진정한 감동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연주자들에게 완벽히 준비할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목소리가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
최고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서도록 주문해야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이 아닐까요?
넷째, 이름을 초월하여 실력과 감동을 준비한 예술가를 환영합니다.
기획단계에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명도(知名度) 있는 스타(star)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니까요.
이때 명성과 내실을 동시에 갖춘 역량 있는 공연자라면 대환영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의 명성이나 학력 경력만을 고려한 나머지
현재의 역량이나 감동이 미흡한 공연자는 곤란합니다.
또한 현재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반영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예술적 기교뿐만 아니라 거대한 홀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풍부한 성량을 가진 성악가를 모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소프라노 김원정 이나 조수미, 테너 김남두 나 임웅균,
바리톤 김동규, 베이스 고성현 등등 말입니다.
기획자들은 전문가시니까 유명 무명을 모두 포함하여
훨씬 더 풍성한 자료를 갖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공연 잘 감상했습니다.
반갑고 기대에 찬 마음에
구태여 몇 가지 고언을 드렸습니다.
혹 착오가 있었다면 넓게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 한복판에
붉게 피어난 꽃 한송이를 보았습니다.
삶을 즐기는 한줄기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더불어,
두 시간 내내 집에 가자는 소리 한마디 없이,
집중하며 경청한 저희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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